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샤 알람 2세 (문단 편집) === 벵골 전쟁 === 1760년 들어서 [[영국 동인도 회사]]의 대인도 영향력은 점점 강화되고 있었다. 특히 샤 알람 2세가 즉위하기 이전, 영국인 [[로버트 클라이브]]가 원래 [[벵골]]의 [[나와브]]이던 시라지를 [[플라시 전투]]에서 대파하며 쫓아내고 영국에 붙은 미르 자파르를 새로운 벵골 나와브로 임명하면서 무굴 제국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1760년에 샤 알람 2세가 황제에 즉위해 어느 정도 제국이 안정을 되찾자 샤 알람 2세는 벵골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기 위해 3만의 대군을 일으켜 동쪽으로 진군한다. 당시 무굴 제국의 바닥까지 긁어모아 겨우 만들어낸 3만 명의 대군에는 슈자 웃다울라, 나집 웃다울라가 이끄는 군대가 주를 이루었으며, 그리고 [[7년 전쟁]] 당시 인도인과 협력해 함께 영국에 맞서 싸웠던 200여 명의 [[프랑스]] 군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샤 알람 2세가 벵골과 [[비하르]]의 파트나 지방으로 진군하며 그 군세는 무려 4만으로 불어났다. 4만 대군이 밀려오자 겁에 질린 미르 자파르는 당장 [[영국 동인도 회사]]의 [[로버트 클라이브]]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 압도적인 화력을 가진 [[영국군]]이 파병되며 샤 알람 2세의 군대는 파트나 전투, 시르푸르 전투, 비르푸르 전투, 시완 전투 등 수많은 전투에서 대파되어 뿔뿔이 흩어지고야 만다. 다만 미르 자파르는 영국에 반기를 들려다 실패해 로버트 클라이브에 의해 쫓겨났고 무하마드 알리가 새 나와브로 옹립되었다. 하지만 무하마드 알리도 얼마 못가 급사하자 미르 카심을 새로운 벵골 나와브로 즉위했는데, 이 미르 카심도 영국인들을 못마땅해 영국에게만 독점되었던 관세 혜택을 철폐하고 파트나 지방에 무굴 제국군에 공급하기 위한 병기창을 짓는 등 영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들만을 골라했다. 미르 카심은 영국인들을 지긋지긋해했고 명목상으로나마 벵골의 지배자를 자처하던 샤 알람 2세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파일:battle-of-bauxar.webp]] 북사르 전투. 미르 카심의 구원 요청을 받은 샤 알람 2세는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영국을 벵골에서 추방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그는 아와드의 나와브인 슈자 웃다울라, 벵골의 나와브 미르 카심의 도움을 받아 대군을 끌어모아 벵골로 다시한번 진군했다. 동인도회사는 무굴 제국의 침공을 막기 위해 영국에 머무르던 로버트 클라이브에게 벵골 총독과 인도 방면 영국군 총사령관의 직책을 맡기고 다시 인도로 파견했다. 클라이브는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헥터 문로 소령에게 7천 명의 병력을 맡겨 무굴 군대에 대적하게 했고, 1764년 10월 22일 [[갠지스 강]] 일대 북사르에서 영국군이 무굴 군대에게 대승을 거두면서 무굴 제국이 품었던 벵골 회복의 꿈은 영영 날라간다. 이를 '''북사르 전투'''라고 부른다. 클라이브는 1765년 맺어진 알라하바드 조약에서 무굴 제국에게 벵골, 비하르, 오리사 지방의 징세권을 뜯어냈고 2천만이 넘는 부유한 벵골인들을 실질적으로 통치할 권리를 얻어냈다.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무굴 제국의 행정구역이었지만 실질적인 권리는 모조리 영국이 쓸어간 것. 그렇게 알라하바드에서 영국과 굴욕적인 조약을 맺은 샤 알람 2세는 6년 정도 알라하바드에 계속 머물렀다. 영국과의 조약 내용 때문에 수도 델리로 돌아가지 못했던 것. 대신 나집 웃다울라가 델리에서 황제의 대리인을 자처했다. 1770년 나집 웃다울라가 사망하고 상대적으로 능력이 떨어지는 나집 웃다울라의 아들 자비타 칸이 자리를 이어받자 기회를 노리던 [[마라타 동맹]]의 마하다지 신데는 북인도를 침공하여 수도 [[델리]]를 정복했다. 이때 마하다지 신데는 명분을 갖추기 위해 무굴 황제를 델리로 데려가고자 했고, 샤 알람 2세는 마하다지 신데의 호송을 받아 1771년 5월에 알라하바드를 출발하여 1772년 1월 델리에 도착했다. 이때부터 샤 알람 2세는 델리에 앉아서 마라타 동맹의 포로로 잡힌 채로 쭉 살았고, 1788년에는 마라타 군대가 아예 영구적으로 델리에 둥지를 틀고 주둔하기 시작한다. 마라타 군대는 1800년대 초에 제2차 앵글로-마라타 전쟁이 일어나 영국군이 마라타 군대를 쫓아낼 때까지 10여 년 가까이 샤 알람 2세를 끼고 델리를 점거하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